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민주주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발전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획된 광주 5·18기념재단은 ‘제3차 민주주의 역사문화답사’의 현장으로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사건 현장과 영동군 보도연맹 최대 학살지인 영동읍 부용리(어서실)를 방문했다.
이번 답사는 25∼26일 이틀간 이루어졌으며, 방문 인원은 30여명으로 교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25일 영동 노근리 현장에 도착해 (사)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의 안내로 현장답사와 증언을 들었으며, 영동군 보도연맹 최대 학살지인 어서실(영동읍 부용리)을 민간인학살진상규명충북대책위운영위원장 박만순씨의 안내를 받아 답사했다.
또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영동군유족회장(회장 임두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26일에는 천태산 영국사를 답사한 후 용화면 용화리에 위치한 이섭진 영세불망비를 찾았다.
이섭진은 영동의 ‘쉰들러’로 불리는 인물로 1950년 7월 18일 남한 정부가 영동군 보도연맹원 처형 명령을 내렸을 당시 영동경찰서 용화면 지서장이었며, 그때 용화면에는 30여명의 보도연맹 가입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평범한 농사꾼들이었다.
이섭진은 보도연맹원들을 목조건물에 수감해 놓고 그 건물에 사람이 빠져나올 만한 구멍을 미리 뚫어 놓았고, 철사나 끈을 자를 수 있는 칼과 가위도 창고 안에 넣어 두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 30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한편 노근리사건은 미군이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 쌍굴에서 1950년 7월 한국인 양민 300여 명을 사살한 사건으로 당시 미군은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아 피난 중이던 양민을 사살했다.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던 양민사살사건은 1960년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에 소청을 제기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전 세계에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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