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영동=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한국전쟁 초기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서 미군공격에 학살된 피란민 유해발굴이 뼛조각 2점을 찾아내는 데 그쳐 희생자 유해의 행방은 미스터리로 남겨지게 됐다.
복수의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유해발굴에 착수한 충북대박물관 박선주(고고미술사학과) 교수팀이 70여일간 현장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은 어린아이로 추정되는 허벅지, 정강이 뼈 등 유골 2점과 탄피 3개, 포탄 부품 1개, 가위와 곰방대, 천조각 등 유류품 일부가 전부다.
증언과 지형 등을 분석해 집단매장 추정지를 5곳(450㎡)으로 압축한 발굴팀은 1차 발굴에서 성과가 없자 조사권역을 5배 가량(2천575㎡) 늘리고 첨단장비인 지표투과레이더(GPR)와 금속탐지기까지 현장에 투입했다.
박 교수는 "목격자의 기억착오나 권역설정이 잘못됐을 것에 대비해 의심지역을 모두 발굴했다"며 "만족스런 결과가 없는 것은 유족들이 여러 차례 왕래하며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남은 시신이 손상됐거나 농지를 경작하면서 노출된 유해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지역 토양 산성도가 pH 4.7~4.94로 유해 등을 오랜기간 보존하기 어려운 것도 악조건"이라고 꼽았다.
▲목격자 증언의 신뢰성
발굴팀이 조사권역을 정하는 데는 목격자 증언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당시 사건현장 인근에 살던 박모(당시 15세)씨 등 2명은 작년 영동군청을 찾아 "학살이 자행된 뒤 동네 어른들과 함께 쌍굴다리 아래 뒤엉켜 썩고 있던 시신 40~50구를 인근 야산 등으로 옮겨 가매장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발굴팀은 "이들이 고령이어서 57년 전 지형이나 가매장 장소를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며 "목격자 중 1명은 인터뷰 과정서 "직접 본 게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끝을 흐렸다"고 말했다.
발굴팀은 또 "목격자가 시신을 옮겼다는 산 중턱 오솔길 말고도 철도 옆 나지막한 쪽에 또다른 길이 나 있던 흔적 등이 발굴과정서 처음 확인했다"며 "증언이 맞더라도 길이 바뀌고 담배밭 등으로 개간된 면적이 워낙 광범위해 정상적인 유해보존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유해매장 가능성 높은 철도
발굴은 불가능하지만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미군의 1차 공격이 이뤄진 경부선 철도 선로 밑에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한.미 합동조사 등에서 생존자들은 "공중공격을 받은 피란민들이 철도 선로(하행선 쪽) 등에서 대부분 죽었고 살아남은 일부는 쌍굴 안으로 옮겨진 뒤 2차 공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양해찬(67)씨는 "철도에서 할머니와 형, 동생 등 세 식구를 잃었지만 끝내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며 "폭격으로 당시 철도 선로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길 정도였는 데 온전하게 남은 시신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노근리희생자유족회 정구도(52) 부위원장도 "당시 폭격으로 끊긴 선로를 북한군이 복구해 시신수습 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폭격에 훼손된 상당수의 시신이 복구과정에서 그대로 선로 밑에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발굴팀을 이끈 박 교수는 "열차가 오가는 선로 밑을 발굴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설령 유해가 묻혔더라도 진동 등에 의해 지금은 흔적을 찾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족 반응과 전망
학살증거인 집단매장지를 찾아내 향후 보상이나 배상을 위한 소송 등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던 유가족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만 목격자들이 가매장지로 지목한 곳에서 당시 상황을 확인해줄 단서가 될 2점의 유골과 가위 등 유류품이 나온 것으로 위안 삼고 있다.
2년 전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는 피해접수를 통해 희생자를 218명(사망 150명, 실종 13명, 후유장애 55명)으로 확인했지만 유가족들은 유해발굴결과에 따라 희생자 수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왔다.
노근리희생자유족회 정은용(84) 위원장은 "생존자 증언과 자체분석 등을 종합할 때 시신을 수습 못한 희생자가 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더 많은 생존자나 목격자가 살아있을 때 서둘러 유해발굴을 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구도 부회장도 "집단매장지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무고한 피란민이 희생된 사건의 실체는 미국정부도 이미 인정했다"며 "유해발굴과 상관없이 진실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유해발굴 자체는 만족스런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공중폭격을 입증할 포탄 잔해물 등을 찾아낸 것은 이번 발굴에서 가장 의미있는 성과"라고 자평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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