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수백명의 무고한 양민의 목숨을 앗아간 1950년 노근리 미군양민학살사건과 관련, 미 정부의 사살 방침이 들어있는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서한이 발견됐다. 존 무초 대사가 미 국무부 앞으로 보낸 서한에는 한국전쟁중 미군 방어선에 접근하는 피난민을 향해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이 담겨져 있다고 외신이 전했다. 무초 대사나 관련 회의에 참석했던 인사들이 모두 사망해 사실관계 확인 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서한이 뒤늦게 드러남에 따라 미 행정부의 진상조사 결과의 신빙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피난민 행렬에 들어간 선량한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씻지 못할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미 정부는 무초 대사의 서한을 받고 발포를 승인을 했는지, 아니면 실행에 옮기지 말도록 했는지에 대해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 미 국방부는 노근리 사건이 외신 보도로 표면화된 이후 지난 1999년부터 무려 16개월동안 자체 진상조사에 나서 겁에 질린 병사들이 피난민 틈에 적이 숨어들어오는 것을 우려해 명령없이 발표한 "불행한 비극" "비계획적 살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발포여부와 관련해 결정적 단서가 될 무초 대사의 서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미 국방부 진상조사관들이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보존돼 있는 무초 대사의 서한을 검토했음을 보여주는 리스트가 조사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고 하는 데 왜 이 부분에 대해 비켜가야만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만에하나 이에 대한 조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쯤되면 미 정부는 노근리 사건을 원점부터 재조사해 무초 대사의 서한이 미 행정부에 전달돼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처리됐는지 명백히 밝혀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 정부는 상부 명령에 따라 발포했다는 참전용사들의 증언이 숱하게 나왔으나 미 국방부가 이를 무시했다고 하는 유족들의 주장을 겸허히 수용하기 바란다.
미국은 발포 방침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결자해지 차원에서 피해자 유족들에게 공개사과하고 충분한 보상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상을 왜곡한 조사관계자들을엄중 문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 국방부의 진상조사가 옳다는 입장이라면 의혹해소를 위해 무초 대사의 서한을 둘러싼 진상규명에 나서 그 결과를 공표하는 게 맞다. 진실규명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미 의회나 제3의 국제기구가 맡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는 무초 대사의 서한으로 노근리 사건 진상조사 결과의 신빙성과 신뢰도가 의심받게 된 만큼 과거사 진상규명 및 인권회복, 한미간 신뢰회복 차원에서 미 정부에 재조사를 공식 요구해야 한다. 당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사격방침을 결정한 노근리 사건 전날 미8군사령부 주최 피난민대책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니 미국의 움직임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이에 대해 즉각적이고 독자적인 조사에 나서는 게 책임있는 정부가 해야 할 일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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