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피란민들을 ‘사냥감’으로 간주, 무차별 총격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전쟁 중 무차별 발포를 승인한 사실을 보여주는 미군 문서만 19건이 있다는 주장도 나와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우발적인 사건’으로 결론지은 한·미 양국의 노근리합동조사 결과가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노근리 사건을 직권 조사할 방침을 시사해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 작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피란민을 사냥감으로 보라’=1999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던 전 AP통신의 최상훈 기자는 31일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해 “미군이 피란민에 대한 무차별 발포를 승인한 사실을 보여주는 문건을 19건 정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최기자는 “7월25일 피란민 대책회의 이후 7월과 8월, 9월 당시의 미군 문건을 보면 피란민을 향해서 총격을 가하라는 지시가 담긴 문건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문서에는 ‘피란민들을 사냥감으로 보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밤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보이면 누군지 묻지 말고 그냥 총격을 가하라. 총격을 가하지 않으면 중대장을 보직 해임한다’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공군 같은 경우 피란민이 8명 이상 보이면 적군으로 간주해서 공격했다는 내용도 있고, ‘이제부터는 보이는 모든 피란민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문건도 있었습니다.”
최기자는 이어 “AP통신이 보유한 문건은 19개이지만 실제로 같은 내용을 담은 문건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은 피란민 대책회의에 한국 정부 고위관계자들도 참석했다는 내용의 존 무초 당시 주한 미대사의 비밀 서한과 관련, “조병옥 내무부장관, 전봉두 헌병사령관, 김태선 치안국장 등이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전지휘권이 미국으로 이관된 상태여서 한국이 독자적 의견을 내긴 어려웠겠지만 한국 측에서 (노근리 사건 등을) 인지를 하고 있었음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올 3월에 나온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보고서’ 역시 당시 한·미 양측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과거사위, 노근리 직권 조사하나=미국측이 학살 사건 자체만 인정하고 상부의 조직적인 명령은 부인하는 것과 관련, 과거사위가 노근리의 진상 확인을 위해 직권조사에 착수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 상임위원은 “국무총리 산하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가 있지만 진상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 확인작업만 하고 있다”면서 “논의를 거쳐 과거사위가 노근리 문제를 직권으로 조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 상임위원은 “유사한 피란민 학살 사건이 61건이나 보고됐다”며 “미국이 베트남전 밀라이 학살에서도 학살 책임성을 인정하지 않았듯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학살 사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측은 재조사에 미온적이다.
미 국방부 플렉스 플렉시코 공보관은 31일 “노근리 사건에 대해선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다”면서 “무초 전 대사의 서한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주는 것은 없다. 현재 재조사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그러나 한·미 합동 조사보고서에 무초 전 대사의 서한이 빠진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이고은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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