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국내외에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한·미 양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그리고 양국 정부는 장관급을 책임자로 하는 대책단을 구성하고 공동조사에 착수했다.
사건 조사에 착수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AP통신의 보도 덕분이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분명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였다. 또 미국 NCC는 50주년 창립 기념행사로 노근리 사건 피해자와 가해 미군들의 ‘용서와 화해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에 따라 부친과 나,그리고 생존 피해자 3명 등 5명이 미국을 방문키로 했다. 하지만 일행들이 나이가 많고 육신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가득한 분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부친과 나는 이분들이 미국 방문 기간에 건강하고 마음의 상처를 온전히 위로 받고 돌아올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1997년 11월8일 10박11일 일정의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먼저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가서 미국 NCC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우리의 자리는 귀빈석이었고 미국 전역에서 모인 교계 지도자들이 기립 박수로 우리를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클리블랜드의 한 교회에서 미국 NCC측이 초청한 참전미군 3명과 함께 ‘화해와 용서의 촛불예배’를 드렸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는 다시 워싱턴으로 향했다. 워싱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친과 나는 포토맥강 근처 한국전쟁 기념탑을 방문,헌화했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은 따져야 했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미군들의 영혼은 추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 NCC는 우리 일행의 미 국방부 방문과 내셔널프레스클럽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미 국방부를 방문했다. 하나님께 우리 일행의 입술을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패트릭 헨리 육군성 차관보와 찰스 크레이긴 국방부 부차관 등 고위 관료들이 펜타곤 현관 계단 아래까지 내려와 우리를 정중하게 맞아줬다. 그런데 미 고위 관료들은 하나 같이 바짝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동안 수 차례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내도 꿈쩍 않던 미 국방부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피해자 대표들은 국방부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질책도 하고 담대하게 할 말을 다했다. 마치 모세가 애굽의 바로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정시간을 30분이나 넘겨 1시간30여분 동안 회의는 진행됐고 양측의 합의 사항은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됐다. 이어 우리 일행은 내셔널프레스클럽으로 이동했다.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자회견장은 미국의 유수 언론 기자들과 수많은 국가의 특파원들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우리는 미국이 인권 대국답게 정직하고 성의 있게,그리고 조속히 진상조사를 마무리해 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 NCC가 때를 맞춰 우리를 초청한 것이나 방미 성과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계획에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방미 기간 내내 나는 “하나님이…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시편 18:32∼33)란 성경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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