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나는 AP통신 최상훈 기자에게 노근리 사건의 모든 것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줬다. 그리고 수년 동안 모은 두툼한 자료집 두 권도 건넸다. 헤어지기 전 나는 최 기자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열심히 취재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꼭 큰 상을 받으라는 축복의 말이었다.
최 기자는 1998년 4월30일자로 900자 분량의 첫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가 나간 직후 AP에는 자료조사 전문기자를 포함해 3명의 노근리 사건 전담취재팀이 구성됐다. 피해자들에 관한 취재는 최 기자,참전 미군들에 대한 취재는 미국 본사취재팀이 맡았다.
AP 취재팀은 증거 문서를 수집하고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십 명의 가해 미군들을 만나 증언을 청취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취재에 몰두했다. 하나님께서는 힘도 없고 돈도 없는 피해자들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은 AP통신을 붙여주신 것이다. 부친과 나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잘 활용하기 위해 AP 취재팀에 해줄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줬다. 부친은 자신의 실화소설과 그동안 모아온 자료,심지어 족보까지 건넸다.
그리고 생존 피해자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렇게 부친과 나는 7∼8개월 이상 취재를 도왔다. 피해자들은 큰 기대를 갖고 사건이 보도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취재에 착수한 지 1년반이 다 돼가는 데도 후속 보도가 되지 않았다. 나는 AP가 미국 언론기관이고 자국의 국익이 걸린 일이라 복잡한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보도가 되도록 주님께 기도했다.
보도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AP사장 등이 보도에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취재팀장이던 로버트 포트 기자가 한직으로 밀려나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진통도 겪었다고 한다. 1999년 9월 중순쯤 최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드디어 본사에서 보도하기로 결정했고 수일내에 보도가 된다고 했다. 9월29일 드디어 노근리 사건의 실상이 AP통신에 의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날아온 낭보였다.
나는 미국과 한국 등 세계 언론의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사건으로 부각되느냐 여부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처럼 영향력 있는 신문과 방송이 AP기사를 어떻게 받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보도 다음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15개 주요 신문이 1면 기사로 받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사설도 썼다. 그리고 CNN NBC 등 미국의 주요 방송도 주요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이 사건을 앞다퉈 크게 다뤘다. AP 보도 전에는 기사 몇 줄 내기 위해 언론사에 통사정을 해도 안됐는데 내외신 기자들이 인터뷰하기 위해 내게 통사정을 했다. AP 기사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사실 전 세계에 걸쳐서 전쟁 중에 발생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노근리 사건은 최근의 일도 아니고 반세기 전의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AP 사장도 보도를 막을 수 없었다. 실로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편 40:1)라는 성경 말씀이 응답된 것이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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