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1주일간의 기도 끝에 12년 동안 정들었던 한전을 떠나 새 직장에서 삶을 시작했다. 신설 복음방송인 기독교TV(CTS)였다.
처음에는 총무부장으로,나중에는 사업국장 직무대행을 맡아 방송국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보니 2년여 동안 노근리 일을 거의 할 수 없었다.
방송국 일이 안정되는 듯하자 나는 노근리 일을 재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돕는 손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5년 6월초 김진희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기독교TV에서 같이 근무하다 영어전문방송인 모 TV로 옮겨 앵커를 맡고 있었다. 김 기자가 6·25 특집뉴스로 노근리 사건을 다루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김 기자의 제의가 무척 반가웠다.
그러나 김 기자의 취재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상사가 취재 허락을 해주지 않아 애를 먹었고 주한미군 사령부에 취재하러 갔을 때는 미군 장교로부터 험한 욕까지 먹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김 기자는 6·25 특집뉴스를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하나님께나 김 기자에게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김 기자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기왕 영어로 어렵게 제작된 뉴스이니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 방송을 내보내면 어떻겠느냐”라고 조심스레 의사를 타진했다. 김 기자는 흔쾌히 그렇게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해 9월초.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거대한 성벽 같은 유리벽 앞에 서 있었다. 유리벽은 투명해 두께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리벽 아래쪽에 조그마한 원 모양의 구멍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원 모양의 유리덩어리가 저만치 구르다 멈췄다. 꿈치고는 너무나 선명했다. 잠을 깨고 난 뒤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궁금했다.
그날 회사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김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보도한 뉴스가 미국 CNN방송의 월드리포트시간에 방영된다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는 그날 새벽의 꿈을 생각해 보았다. 그 꿈은 분명 노근리 사건에 돌파구가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그 꿈처럼 현실의 거대한 성벽은 이제야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뚫렸을 뿐이다. 하나님이 내가 그 일 때문에 노심초사하니까 위로해 주시려고 꿈으로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CNN 보도가 나간 후 MBC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에서도 이 사건을 취재해 1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후 나와 부친은 미국 정부와 미 상?하원 의장 앞으로 보내는 청원서 작성에 몰두했다. 그동안 내가 조선인민보 등 관련 자료를 많이 확보했던 터라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미국 정부에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영문청원서를 작성하고 그와 관련한 증거 서류도 수십 장씩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수많은 문서를 번역해야 했기 때문에 한달 가량이 소요됐다.
이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한 사람이 있었다. 조현석 변리사였다. 내 일에 큰 관심을 가진 조 변리사는 영어에 능숙한 직원까지 붙여주면서 내 작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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