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근리 학살사건을 범위를 넘어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갑니다.
12일 한미 양국이 발표한 노근리사건 최종 조사결과에 대해 충북 영동의 피해자들은 “한마디로 분노와 허탈감을 억누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일부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은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를 찾아 거칠게 분노를 쏟아냈다. 서울에서 공식기자회견을 갖고 “미흡하다. 법적 대응하겠다”고 다짐한 대책위원회의 회견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남의 눈을 박은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자식들의 혼사 때도 제대로 참가하지 않았어요. 그간의 고통을 단 한푼도 보상하지 않고 자녀들마저 다 커버린 지금에 와서 장학금이나 몇 푼 주겠다니 말이 되는 겁니까? ”
양해숙(梁海淑·63·영동읍 회동리)씨는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TV에 미국사람들이 나오는데 쥐어뜯어라도 주고 싶었다”고 분개했다. 양씨는 당시 쌍굴다리에서 자신의 왼쪽 눈과 오빠 및 남동생을 잃었다.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었으며 총탄이 자신의 코를 관통하는 바람에 얼굴이 일그러진 정구학(鄭求學·59·영동읍 계산리)씨는 “반세기의 한이 풀리려나 했더니 사과조차 제대로 못받고 미군의 상부지시에 의한 것도 아니라니 이제 그 한을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모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러나 “위령탑을 만드는 것은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영령들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딸과 시어머니 시동생 등을 잃었다는 김서운씨(76·영동읍 주곡리)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얕보기 때문에 설렁설렁 넘어가려 한다”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노근리 피해자들은 99년 9월 30일 AP 통신이 이 사건에 대한 특집기사를 보도한 뒤 한미 양국이 조사에 착수하자 기대에 부풀었었다. 국내외 언론과 조사단이 찾아와 인터뷰 요청을 하면 농번기에도 삽과 호미를 내던지고 따라 나섰다. 일부는 언론이나 조사단과 연락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 휴대전화도 구입했다.
농협 빚을 얻어 쓰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매월 3만원씩 회비를 모아 대책위가 각종 집회를 열고 활동을 하도록 지원해 왔다.
<지명훈 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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