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의 멋과 향기를 느끼고 몸과 마음에 여유를 지닙니다.
국악의 형식(Musical form)은 다양하여 몇 가지로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형식 몇 가지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민요는 크게 ‘통속민요(通俗民謠)’와 ‘토속민요’ 혹은 ‘향토민요(鄕土民謠)’로 나뉘는데, 통속민요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려지는 민요이다. 반면에 향토민요는 일정한 지역에 한정하여 전승되는 것으로, 주로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勞動謠)나 부녀자들의 노래, 또는 어린이들의 동요(童謠)가 여기에 속한다.
민요는 주로 후렴을 가지고 있는 유절형식(有節形式)으로, 여럿이 부를 때는 독창으로 앞소리를 부르고, 후렴은 다 같이 부른다. 그러나 서양의 노래처럼 반드시 각 절(節)의 가사 다음에 후렴이 오는 것이 아니라 후렴과 후렴 사이에 각 절의 가사가 놓이는 형태의 노래도 있다.(서양음악의 한 절에 해당하는 단위를 국악에서는 ‘한 마루’ 또는 ‘한 마디’라 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그 노래의 특징은 후렴구(後斂句)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노래의 후렴구에서 되풀이되는 음절이나, 또는 후렴구의 첫 부분에 나타나는 말을 따서 그 노래의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향토민요 가운데 노동요는 많은 인원이 규칙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작업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주로 ‘메기고 받는 방법’으로 연행한다. ‘메기고 받는 법’이란 독창으로 앞소리를 메기고, 여럿이 뒷소리를 받으며 부르는 것을 말하는데, 메기는 소리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를 수 있고, 가락도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받는 소리는 대부분 규칙적인 가사와 가락으로 되어 있다.
한편, 지방이나 악곡에 따라, 받는 소리가 없이 한 절의 앞부분을 독창으로 부르고, 뒷부분을 제창으로 이어 부르는 방법으로 부르는 노래도 있으며, 혼자 작업하며 부르는 노동요 중에는 메기고 받지 않으며 독창으로 부르는 노래도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향토민요 형식은 같은 가락이 되풀이되는 점에서 유절형식의 노래라 할 수 있으며, 각 절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메기는 소리를 자유롭게 변주한다는 점에서는 변형유절형식의 악곡으로 볼 수도 있다.
가곡과 시조는 시조시(時調詩)를 노랫말로 쓰고 있는 점은 같으나, 노래의 형식은 크게 다르다. 가곡은 본래 여러 곡을 계속하여 노래하던 음악으로, 각 곡의 형식은 대여음·초장·2장·3장·중여음·4장·5장으로 되어 있다. 대여음은 전주의 역할인 동시에 후주의 기능을 하며 다음 노래로 연결되고, 중여음은 간주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첫 곡인 초삭대엽(初數大葉)은 ‘다스름(調音)’이라는 전주에 이어 초장부터 연주된다. 각 곡은 통절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여러 곡끼리는 앞의 곡을 조금씩 변주하여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로 본다면 A-A'-A"….등으로 볼 수 있다.
시조는 시조시의 형식과 같이 초장·중장·종장의 세 부분 형식으로 되어 있다. 짧은 전주가 있고, 초장과 중장의 끝에는 짧은 여음이 붙어 있다. 평시조· 사설시조·지름시조 등은 a-b-c로 볼 수 있다.
가사(歌詞)와 잡가(雜歌)는 비교적 긴 사설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 점은 짧은 사설을 지닌 민요나 가곡, 시조와 구분된다. 가사(歌詞)는 현재 12곡이 불리고 있기 때문에 흔히 12가사라고 한다. 가사에는 백구사(白鷗詞)와 같이 후렴이 없는 노래와 죽지사(竹枝詞) 처럼 후렴이 각 절의 뒷부분에 붙는 노래가 있는데, 대부분 여러 절(節)로 나뉘어 있다. 각 절의 가락은 대개 비슷하며, 같은 가락이 되풀이되는 부분도 있다.
잡가(雜歌)는 전문적인 소리꾼들이 부르던 노래로 좌창(座唱)과 입창(立唱,선소리)으로 구분된다. 경기잡가와 서도잡가로 대표되는 좌창은 실내에 앉아서 부르는 노래로, 주로 독창으로 부르는데, 민요에 비하여 긴 가사를 노래한다. 잡가는 각 절이 반복되는 형식이나, 그 때마다 변하는 노랫말에 따라 곡조가 변화하기도 한다. 대부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후렴이 없는 변형유절형식의 노래이다. 입창으로 주로 부르는 노래는 경기지방과 서도지방의 산타령, 남도지방의 선소리 등인데, 이 노래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며, 독창으로 메기고, 함께 받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메기는 부분 뿐 만 아니라 받는 부분의 노래도 사설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이다. 입창은 여러 곡의 노래를 이어 부르는데, 주로 느린 노래를 먼저 부르고, 차츰 빠른 노래를 이어 부른다.
대부분의 국악곡은 물레에서 실을 자아내는 듯한 '무한 발전 선율'에 의하여 악곡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대비와 대조를 중시하는 서양음악과는 다른 구조를 지니게 된다. 몇몇 악곡에서는 반복의 원리를 이용하여 악곡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꾀하는 구조가 발견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몇 가지 형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환입(還入)형식이란 서양의 다 카포(Da capo)와 같은 것으로 악곡의 앞부분을 뒤에서 반복하는 것의 일종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첫 부분을 변주하여 결국 a-b-c-b의 구조를 지니게 되는데, c에 해당하는 부분을 ‘환두(換頭)’라 한다. 본래 “보허자”의 형식인 이 환입형식은 현행의 “관악보허자”에서도 발견되는데, 특히 3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에서는 A(a-b), A'(c-b), A"(d-b)의 구조를 보인다.
“수제천”과 같은 악곡은 4장(章)으로 구성되는데, 1-3장이 조금씩 변형 되면서 반복된다. 즉 전 4장 가운데 1-2장은 각 장의 첫 부분만 다르고 뒷부분은 같으며, 제3장은 제2장의 전체적인 변형이다. 이와 같은 “수제천”의 형식을 문자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
A | A' | A'' | B |
국악의 중요한 연주곡목인 “영산회상” 계통의 악곡이나 산조 등은 여러 개의 악장(樂章)이모여 큰 규모의 한 악곡을 이룬다. 상령산-중령산-세령산-가락더리-삼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으로 이루어진 “현악영산회상”이나,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으로 이루어진 산조는 첫 곡이 매우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로 한배(tempo)가 빨라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성악곡에서도 발견되는데 “방아타령과 자진방아타령”, “수심가와 엮음수심가”, “육자배기와 자진육자배기”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느린 곡을 먼저 연주하고, 빠른 곡을 뒤에 붙이는 것이 국악의 보편적인 악장 구조이다.
이 점은 서양의 음악이 각 악장간의 대비와 균형을 통하여 형식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꾀하는데 비해, 우리 전통음악은 점진적인 변화와 발전에 의하여 악흥을 고조시키는 것을 악곡구성의 기본 원리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서양의 문화가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에 가치를 두고, 변화해 온 것임에 비하여, 동양의 문화는 ‘기존의 것과의 조화’에 바탕을 두고 서서히 변모해 은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즉 국악의 악장 구성 원리는 ‘멋과 흥의 점층’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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