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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향토유적 제 3 호 심천면 약목리와 금정리 도로변에 기암(奇岩)이 우뚝 솟아 양강(陽江)에 불쑥 튀어나오니, 강물은 대(臺)를 휘어 감고 맴돌며, 대(臺)는 깍아 세운듯 벼랑을 이루고 송림이 우거져 있어 고기가 노니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옛날 민욱(閔昱)이 그 아우 민성(閔晟)과 더불어 이곳에서 놀며, 아래 위로 고기가 노는 모양을 장난하며 보았기에 이름을 관어대라 하였다. 민욱은 조선중기의 학자로 호는 석계(石溪)이며 영동출신이다."관어대"란 현판은 민병석(閔丙奭)의 친필로서 민병석은 호가 시남(詩南)..
영동군 향토유적 제 2 호 조선 중종조 시대의 삼괴당 남지언 선생이 을사사화시 은거하며, 즐기던 곳으로 이곳에 그의 유허비가 있어 대각(臺閣)을 건립하여 고반대라 하고 깊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영사각(永思閣)이라 했다.앞에는 천연 우물이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장마에도 넘치지 않아 봉황정(鳳凰井)이라 부르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둥근기둥 목조기와 팔작집으로 16.5㎡이다
약 300여 년 전 영일 정씨 휘(諱) 익(瀷) 공이 문흥정(文興亭)을 금성산(錦城山) 아래에 세웠으나,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어 1939년【기묘(己卯)】에 종중에서 중건하고 화수정이라 이름했다. 이 정각의 규모는 24㎡의 둥근기둥,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19번 국도 확장사업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 병 화(兵火) : 전쟁으로 인한 화재
영동군 향토유적 제 35 호 이곳은 양산면 송호리에서 강을 따라 500m쯤 올라와 강 언덕 반석 위에 지어진 정각이다.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멀고 가까운 곳의 산이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양산팔경중 제 5경이다.정각은 2칸의 목조기와 팔작집이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 33 호 양산면 수두리에서 강을 건너 대곡 입구 언덕 강안에 위치하여 있다.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양산들이 한눈에 보이고, 금강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정각은 목조 기와로 당대 거유(巨儒)였던 백우(白愚) 이시연(李時然)의 문인(門人)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정각이다. 만취(晩翠) 이찬연(李燦然)의 기문(記文) 등이 있다. ※ 거 유(巨儒) : 이름난 유학자 기 문(記文) : 기록한 글
금운(錦雲) 이명주(李命周)가 젊어서부터 이곳을 좋아하여 동문수학(同門受學)하던 13명과 함께 힘을 모아 병신년(丙申)에 정자를 지으니 어진 새들이 아침볕【조양(朝陽)】에 와서 울게 되어 봉양정이라 이름했다. 이 땅과 이 정자는 일만 가지 기상이 있어 옛날부터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못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 동문수학 : 한 스승 또는 한 학교에서 같이 학문을 닦고 배움. 소상팔경 :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여덟 가지 빼어난 절경.
이요당(二樂堂) 박흥거(朴興居)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연안부사(延安府使) 였던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이 관직을 사직하고 이 곳으로 낙향하여 강 언덕 위에 전원을 마련, 여러 되의 해송 종자를 손수 뿌려서 송전(松田)이라 불렀고, 정자를 지어 만취당(晩翠堂)이라 하고 예의와 풍속 및 정치와 역사를 설교하며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후손들이 조상의 덕행을 추모하고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35년 가을 문중이 모여 정자를 짓기로 하고 콘크리트 기와집 16.5㎡를 건립 하였으니,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현재 건물은 ..
원래는 강선대(降仙臺) 옆에 있었으나, 오래되어 무너진 것을 25명의 선비들이 뜻을 같이하여 계를 조직 하였고, 계에서 모아진 자금으로 1934년 (甲戌) 착공하여 1935년(乙亥) 7월 7일 준공했다. 반세기가 지나 도복(倒伏) 위기에 달한 정자를 후손인 상속계원(相續契員)들이 성금을 모아 1990년 4월 7일 중수 하였고, 채하정 중수 공적비를 세웠다.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 집으로 내부는 우물마루이고 난간을 돌렸으며, 안에는 동강(東江) 김영한(金 漢)이 지은 채하정기를 비롯하여 전태언(全泰彦)의 ..
조선시대 사계(沙溪) 김장생의 문인(門人) 김감(金鑑)이 강을 따라 정자를 세우고 침강정이라 하였다.이곳에서 중봉 조헌(趙憲)과 읍청( 淸) 박사종(朴嗣宗)이 더불어 거닐며 봄꽃과 강, 국화를 벗삼아 의리와 학문을 강론 하면서 술잔을 들어 세상의 근심을 바람결에 서로 나누기도 하였다.현재 건물은 원래 용산면 가곡리에 있었는데 1919년에 옮겨 세운 것이다. 이 정자는 20㎡의 둥근기둥 목조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조선 철종 11년(1860) 치당(治堂) 성대식(成大植)이 세웠으며, 양강(楊江) 위에 자리잡고 있다.앞에는 장강(長江)이 뻗어 마치 유단(油單)을 펼쳐 놓은 듯하고, 뒤에는 높은 산들이 병풍을 두른 듯 하여 모든 번뇌를 씻고 산색(山色)을 우러러 심신을 바르고 고요하게 할 수 있어 선비들이 수양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 정자의 규모는 둥근 기둥, 정면 2칸, 측면 2칸, 팔작 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 유 단(油單) : 기름에 젖은 두껍고 질긴 큰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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