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려문(旌閭門)은 조선 선조(宣祖)때부터 영조(英祖)때 까지(1574∼1733) 덕수이씨가문에서 배출한 효자(孝子) 6인과 효부(孝婦) 2인에 대한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영조 40년(1764)에 한곳에 모아 건립한 것이다.
선조 7년(1574) 지극한 효도로 신령이 도와 꿩이 집으로 날아들어 부친을 봉양 하였다는 이학수(李鶴壽), 숙종 32년(1706) 손가락을 깨물어 부친의 병을 구한 이탱(李 ), 시부(媤父)에게 침입한 강도를 설복(說服)시킨 관성전씨(管城全氏), 할머니의 소원을 위해 눈 덮인 산에서 감귤을 얻었다는 이복초(李復初), 시할머니가 치아가 없어지자 자신의 젖으로 봉양한 구례장씨(求禮張氏), 경종 원년(1721) 양친의 시묘(侍墓)를 6년간 정성으로 하면서 손발톱이 빠졌다는 이만춘(李萬春), 영조 9년(1733)모친에 대한 지극한 효도로 겨울철에 잉어를 구하여 봉양한 이정철(李廷喆), 불 속에서 부친을 엎고 나온 이채(李埰)가 이 정문의 주인공들이다.
효(孝)란 부모님 생시에는 극진한 마음으로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섬기고, 사후에는 법도(法道)에 따라 예(禮)를 다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효도가 매우 특출하다 하여도 조정에서 정려를 내리는 경우가 흔치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여러 세대 즉 6세에 걸쳐 8인의 효자, 효부가 배출됨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것으로서, 잊혀져 가는 효(孝)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