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여는 1909년 고종 황제가 6촌형인 이용직(초명은 이용강) 대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하사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는 왕가의 상여이다.보통 상여와는 달리 대차·소차의 2중 구조로 되어 있다.대차는 36명, 소차는 24명이 메도록 되어 있어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외부장식이 섬세하고 다채롭다.대차의 총 길이는 10m이고 둘레 47cm이며, 교자판(칠성판)이 있어 칠성판(가로 1.2m, 고리 8개)에 고정시킬 수 있다.장식은 용머리가 앞뒤로 2개씩 4개, 봉(鳳:수컷)이 앞뒤 2개씩 4개, 황(凰:암컷)이 앞뒤로 1개씩 2개, 동자상이 앞뒤 좌우에 6개씩 12개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고, 연꽃 등 단청과 풍경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혼백을 모시는 요여(腰輿)는 4명이 들도록 되어 있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상여의 주인이던 이용직(李用直:1824∼1909)은 철종때 문과에 급제하고 용강 현감을 거쳐 여주 목사, 영남 어사, 상주 감사에 이어 공조 판서를 역임하고, 홍문관 예문관 제학(提學)을 지냈으며, 기로사(耆老社)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