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 향토유적 제 30 호
조선초 문신 정수충(鄭守忠)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 태종 원년(1401년)에 출생, 예종 원년(1469년)에 사망 했으며, 자는 경부(敬夫), 본관은 하동(河東), 호는 고송재(孤松齋), 시호(諡號)는 문절공(文節公)이다.
공은 재덕을 겸비한 인사로서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사부가 되었다.
이어 1463년에 대사성이 되고 좌찬성에 이르렀다. 항상 인(仁)을 숭상하고 청빈한 생활로서 빈곤한 자를 친척같이 대접하며, 그 교훈과 덕화가 주위 일대에 알려졌다.
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청백서원(淸白書院)에 배향 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후손들이 1700년경에 현 위치에 영정을
봉안, 지방 유림들이 제사를 올리고 청절사라 이름 하였다.
목조 기와 집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 대사성 : 조선시대 때 정3품의 관직으로 현재의 1급 공무원에 준하는 벼슬
좌찬성 : 조선시대 때 관직으로 종1품의 관직, 현재의 부총리급
봉 안 : 신주나 화상(畵像)을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