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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답사기2, 와이너리농가
영동 와이너리의 명가 컨츄리와인
충북포도의 주산지로 이름 높은 영동. 영동포도하면 ‘주곡리포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마을이 충북포도의 주 산지 영동을 있게 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영동포도의 시배지인 것.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마을이 영동포도를 처음 심은 마을이 되었을까? 그 사연을 들어보자.
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강제 징용되어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한 노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당한 이 노인은 전장에서 포로로 잡혀 서태평양의 섬나라 미크로네시아에 있는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만난 스페인사람들과 지내며 그들이 알려 준 포도의 효능과 와인 빚는 법 등을 배우게 되고, 노인은 고향에 돌아와 그 맛을 잊지 못해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순전히 포로수용소 시절 맛보았던 와인의 맛을 잊지 못해서다.
당시 황간면사무소에서 사무를 보며 포도농사도 짓고, 농사지은 포도는 큰 항아리에 포도주를 담가 이웃과 나눠먹는 것을 낙으로 살았던 노인. 담는 양도 엄청나 이웃과 친지들에게 인심을 쓰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해가 갈수록 탐스럽게 영그는 포도처럼 자식도 자라 장가를 보내니 복덩어리 며느리가 들어와서 노인의 집을 영동 와이너리의 명가로 키우며 자식에게 대물림하기를 3대째에 이른다. ‘컨츄리와인’이 그것. 1965년 노인이 고향마을인 주곡리에 처음 포도를 재배한 지 45년 만에 집안에서 대대로 담가먹던 가양주로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했다.
컨츄리와인 탄생의 주인공은 이 집 며느리 한춘화씨. 남편과 함께 아버님 대를 이어 포도농사를 짓던 중, 태풍 루사와 매미로 인해 포도농사를 망쳤던 게 계기가 되었다. 처음 태풍피해를 입고, 그 이듬해 또 피해를 입자 매미 때에는 상품가치가 없는 포도 전량을 버리지 않고 드럼통에 포도주를 담가 이웃과 나눠먹기도 하고 더러는 팔기도 한 것. 2002년, 2003년 연이어 몰아닥친 태풍 루사와 매미로부터 피해를 겪으면서 포도주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한씨가 8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2009년 컨츄리와인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주류제조면허취득이 확정되자.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김덕현-32세)을 불러들여 가업을 잇게 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아들 또한 어머님의 부름에 흔쾌히 귀향을 결심. 포도농사 3대, 와이너리 2대를 잇고 있다.
컨츄리와인은 직접 농사지은 포도로 빚기 때문에 믿음이 가고, 입에 착 달라붙는 맛에 반할만큼 컨츄리와인만의 제조비법에 감탄을 한다. 병입에서 밀봉까지 한 병, 한 병. 정성을 다해 저온공법으로 멸균과정을 거치니 몸에 좋은 성분만 와인에 남아 고유의 향과 맛, 영양성분까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몸을 감싼다.
대구가 고향인 한춘화씨는 도시생활에 익숙한 도시처녀였다. 현재의 남편을 만나 주곡리로 시집 올 것을 결심한데는 연애시절 남편 집에 놀러오니 보라색, 흰색 도라지꽃이 흐드러진 과수원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주먹만 한 자두가 탐스럽게 열려있는가 하면 포도밭의 포도는 송이송이 익어갈 무렵 여름의 아름다운 풍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예쁜 꽃 피고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한 이곳, 평화로운 농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부모님을 모시고 일생을 행복하게 살 것을 기약하며 웨딩마치를 올렸다. 이후 이곳까지 시집오게 한 그 몽환적인 풍경은 농사시름에 살짝 퇴색이 되었지만, 다복한 가정을 꾸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1990년 대 후반 황간우체국에서 남편과 함께 컴퓨터 교육을 받았던 그녀는 인터넷 동갑내기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시골살이 이야기를 일기를 쓰듯 시시콜콜히 카페에 올리며 활동도 하고 정모에도 참석하면서 회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만명의 회원이 있는 이 카페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은 ‘컨츄리아낙네.’ 생각도 행동도 천상 시골아줌마이기를 자부했고, 남들이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다.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회원들과 소통하며 농사일에 고되지만 행복한 삶을 누렸던 한씨. 그러나 인생사가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포도농사를 가업으로 이어가며 큰 걱정없이 살아가던 어느 해 태풍 매미와 루사가 포도밭을 망쳐놓는 사건을 겪은 후부터 한씨 특유의 근성이 살아났다. 드럼통을 구해 태풍피해를 입은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 가까이 지내는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더러는 팔기도하다보니 ‘컨츄리아낙네표’ 포도주는 회원들이 즐겨 찾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태풍 매미로 인한 포도주 담그기는 자연재해가 비껴간 이후 8년간 멈추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시작했던 것이 컨츄리아낙네가 담근 포도주를 꾸준히 찾는 회원들 덕이었다. 기왕 내친 걸음 주류제조면허를 받아 가양주 시장에 뛰어든 한씨는 회사 이름 짓는데도 ‘컨츄리 아낙네표’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다소 촌스러운 브랜드명인 ‘컨츄리와인은’ 그래서 탄생했다. 이러한 사연을 알고 보면 컨츄리아낙네 포도농사의 애환이 담긴 이 브랜드명, 컨츄리와인은 더 이상 촌스럽지 않다. 그리고 더욱 정감이 간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 귀향을 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이야기다. 가양주를 상품화하여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어머님의 열정에 못 이겨서 도시를 떠나 다시 돌아온 것도 아니다. 그저 어머니가 부르시니 귀향을 했던 것. 결혼도 안한 총각이 시골 살이를 결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음은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덕현씨는 그렇게 귀향을 하여 부모님을 도우며 대물림 포도농사에 뛰어들었다.
어머니인들 직장생활 잘하는 혼기 닥친 아들을 생각 없이 시골로 내려오라 했을리는 없을 터, 막 창업을 시작 한 컨츄리와인의 대표 감으로 아들을 지목했던 것이다. 포도농사와 함께 사업체도 물려받아 가업을 이으라는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현씨는 모든 노력을 다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은 현대적 감각과 마케팅력을 보태서 컨츄리아낙네표 와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기계나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침전방식으로 생산된 와인을 병입단계의 멸균처리를 산화방지제인 무수아황산을 쓰지 않고 파스퇴르우유의 멸균 방식인 저온처리방식을 쓰는 것, 원료생산부터 완제품생산까지 정성스러운 손이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100% 수제 와인이다.
2012년 5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SI 국제 소믈리에총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소믈리에 경기대회 공식 만찬용 와인으로 선정되어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2013년에는 베를린 와인트로피와 공동 주관한 대전국제와인트로피에서 실버메달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컨츄리와인이 탄생하기까지 덕현씨의 미각과 현대적 감각이 있기도 했지만 어머니 한씨의 그늘을 넘어설 수는 없다. 33년 된 덕현씨네 전화번호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것. 덕현씨네 집 포도맛을 아는 수십 년 단골들이 여전히 찾기 때문이다.
덕현씨의 고향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는 일교차가 심한 고랭지기후의 특성을 보이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포도의 당도는 물론 저장성 또한 뛰어난 것이 이 마을 포도의 자랑이다. 덕현씨의 할아버지가 처음 심은 포도나무는 이웃과 이웃에 분양하기를 거듭해 마을 가구의 80%가 포도농사를 짓는 포도마을이 됐다.
45년, 3대를 이어 1만여 제곱미터 규모로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컨츄리와인은 8월 말에서 9월 초, 포도수확기에 가면 포도 따기 체험과 함께 와인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보너스로 추가되는 것은 와인시음과 포도즙 시음,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포도를 따고, 깨끗이 씻어 가지를 분리하고, 껍질을 으깨 통에 담은 다음, 정량의 설탕과 효모를 첨가하면 포도주 담그기는 끝. 농원에서 알려주는 대로 집에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으면 때에 맞춰 문자로 와인 거르는 법과 거른 후 보관법, 보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 정제된 와인 추출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와인만들기 체험은 개별단위 가족부터 20명 이내의 단체까지 체험이 가능하다. 체험을 하지 않고 와인 시음과 구매도 가능하다(문의 및 예약 043-742-2095).
내비게이션 입력 명칭 및 주소: 컨츄리와인,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조현길 30
자가용 이용 | 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을 통과하면 4번국도와 합류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 4번국도를 따라 영동읍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9.2km 전방 마을 어귀에 닿는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접어들면 목적지.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찾기 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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