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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주병진의 히트작 ‘칠갑산’이 탄생하기 전, 충남 청양과 그 고장의 산 칠갑산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었다. 시골아낙의 삶을 애잔하게 표현한 이 노래는,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널리 퍼져 칠갑산은 물론 지역의 주산이 칠갑산인 충남 청양이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지역에 얽힌 노래의 문화적 가치는 지대하다.
충북영동군과 경북 김천시를 잇는 고개 추풍령 또한 마찬가지다. 전범성이 작사하고, 백영호가 작곡한 남상규의 구수한 노래 ‘추풍령’도 청양의 예와 같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 흘러간 그 세월을 뒤 돌아 보는 /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그러나 “바람 쉬어가고, 구름자고 가는 고개”란 노랫말을 떠올리며 지나다가 적잖이 실망하는 사람 더러 있다. 노래처럼 구비길은 없고, 구름도 바람도 쉬어갈 만 한 높직한 고개도 없다.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했던가? 추풍령은 비령비야(非嶺非野)이다. 단지 그 노래가 전하는 서정만이 추풍령을 감돌뿐이다.
금산(320m)과 눌의산(740m) 사이 해발고도 220m의 안부. 백두대간이 추풍령 인근에 이르러 금산을 일구고, 급히 고도를 낮춰 해발고도 200~280m의 높이로 1.5km의 구간을 달리며 숨을 고르다가, 불끈 솟아올라 눌의산을 일군 지역이 추풍령이다. 1.5km에 이르는 200m대의 폭넓은 백두대간 마루금 뿐만 아니라, 황간에서 추풍령까지 9.7km의 고갯길 또한 해발고도 170m에서 꾸준히 상승하여 220m의 추풍령에 이르니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고갯길이 된 것이다. 사면이 산. 분지가 발달한 추풍령일대는 농경지로 손색없어 예부터 큰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고장이면서 영남과 충청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어서 오고가는 길손 또한 많은지라 예부터 삶이 그리 궁핍하지 않은 고장이다.
추풍령하면 흔히들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하는 것은 남상규의 노래가 큰 몫을 했다. 여기에 굳히기로 들어간 것은 88년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기념으로 고갯마루에 세운 노래비(-碑)다. 노래는 슬프다. 그러나 추풍령사람들은 그 노래를 사랑하기에 ‘가을의 풍요가 있는 고개’를 뜻하는 원래의 지명 추풍(秋豊)을 굳이 고집하지 않는다. 모두가 가난했던 60~70년대 이전부터 고갯길 넘나들던 길손들의 애잔한 이야기 왜아니 녹아들었겠는가.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싸늘한 철길 /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 거칠은 두 뺨 위에 눈물이 어려 /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남상규의 노래 ‘추풍령’의 2절이다.
조선 초기부터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는 문경새재(조령)가 큰 길목이었고, 추풍령은 그처럼 큰 길목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때 추풍령은 역사적 반전기를 맞는다. 경부선철도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역이 생기고, 문경새재 넘나들던 상인과 길손 또한 문경새재를 버리고 추풍령을 넘나드니 추풍령 저잣거리가 활기를 띄었다. 이때부터 추풍령고갯길은 철길 사연어린 애잔한 이야기 하나 더했다.
추풍령에 경제적 파급효과를 몰고 온 추풍령역은 당시 기차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쉬어간 것은 승객 승하차를 위해서가 아니요, 고개가 높아서 쉬어간 것도 아니다. 이곳에는 증기기관차 급수탑이 설치되어 있어서 물이 모자라는 기차는 이곳에서 물을 채우고 다시 가던 길을 갔던 것이었다. “빼액~빽” 물을 채우고 출발하며 울리는, 기적소리 요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남상규의 노래 중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이라는 구절은 그 이야기의 서정적 표현이 아닐까 싶다.
추풍(秋風 또는 秋豊)이라는 어감은 그 뜻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사람에 따라 달리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옛날 영남 선비들이 과거보러 갈 때는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기 싫어서 이 고개 넘기를 피했다지만, 풍류를 즐기는 객은 추상(秋想)어린 시심(詩心)을 멋들어지게 노래했을 수도 있었겠고, 그 이름이 작사가 영감 자극해 오늘의 노랫말이 나온 것은 아닌지...
秋風인지 秋豊인지 그 뜻을 밝히자니, 추풍령면 사무소의 해석에 의한다. 추풍령이라 한 뜻은 “추풍령일대가 분지이다 보니 인근의 지역보다 가을 물이 일찍 들고, 고개치고는 발달한 분지 덕에 가을걷이가 풍성하다.”하여 풍년풍자를 써서 ‘秋豊’이라 했으니 이것이 본래 지명이라는 것이다.
경부선철도와 4번국도가 면의 중심부를 지나면서 지역 경제나 교통을 어느 지역에 기대지 않고 살았던 풍요로운 고장 추풍령. 세월은 흘러서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넘고 보니, 추풍령을 지나던 자동차들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쉬어가던 길손들은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서 쉬어간다. 그러다보니 번성했던 추풍령은 쇠락을 했는데, 값싸고 경제적이어서 서민들이 즐겨 타던 비둘기호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나마 이 고장에 사람들 안내하던 4번국도는 철길너머 멀리 우회하여 김천으로 황간으로 내달리면서 더 이상 사람들을 안내하지 않는다.
길도 사람의 것이어서 흥망성쇠를 겪는가보다.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고개를 넘는가 하면 충청과 영남을 잇는 4번국도가 일찍부터 넘었던 추풍령삼거리는 발달된 교통과는 달리 인적 드문 옛길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 고개는 조선시대 때 관로로서의 기능을 하였는가 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입한 통로였으며, 6.25 때 부산 점령을 위해 북한군이 넘었던 고개였으며, 개화기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충청과 영남을 오가는 상인과 길손이 넘나들던 고개였다.
저잣거리 활기 넘치는 옛 영화 다시 누릴 길 없을까?
뱃길 빼고 길이란 길은 다 있으니 접근성 좋은 이 고장은, 백두대간 트래킹이 일반화 되면서 이 고장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산타는 사람들이 가끔 오지만 예전보다 늘었다.”는, 추풍리 밥집 주인할머니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물론 늘어봐야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겠지만 이를 지역발전의 계기로 삼는다면 산악문화의 메카로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삼팔선 이남의 백두대간 중 3분의 2 지점이 추풍령이니 길목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백두대간 종주산행은 어렵고 힘들다. 게다가 시간 또한 수개월을 두고 걸어야 종주를 마칠 수 있다.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구간, 구간 거북이처럼 종주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말할 것 없다. 최소한 2년 이상을 계획해야 하니 그렇다. 이쯤에서 아쉬움을 토로하자면 백두대간 문화학교 같은 프로그램이 추풍령처럼 백두대간이 지나면서 접근성 좋은 곳에서 상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으로 추풍령이 산악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 더 바랄 것 없겠다.
추풍령에서 삼도봉까지 33.6km, 추풍령에서 국수봉까지 14.3km. ‘백두대간 맛보기 산행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떠올리며 아쉬움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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