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문화가 함께하는 관광도시 영동으로 떠나보세요
이 곳은 충주 박씨 종중에서 후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서당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선영 아래에 지었기 때문에 자손들의 작업장으로, 묘소에 향사할 때 재실의 역할로도 사용되었다. 중종 15년(1520)에 박씨 가문의 목사공 등 3형제가 당시 황간현감 박영(朴英:1471∼1540) 선생에게 배울 때 선생의 지시에 의해 처음 지었다. 숙종 35년(1709)과, 영조 11년(1735), 고종 6년(1869)에 각각 중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집이다. 중앙의 2칸은 우물마루(짧은 널을 ..
이 곳은 충주 박씨 박수근(朴守謹)의 4형제가 나이 80이 되도록 학문을 익히던 서당이다. 따라서 사로당이라 하였다. 아우들은 수인(守認), 수해(守諧), 수원(守源)이다. 숙종 35년(1710)에 처음 지었다. 영조 43년(1767)에 중수하였고,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면에서 120cm 높이에 마루면을 잡은 전형적인 별당 건축이다. 보기 드문 높은 마루를 하고 사면에는 간결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다. 박수근은 호를 ..
이 집은 1916년에 세워진 민가이다. 안채와 사랑채 및 소슬 문형의 대문 등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확실한 건축연대를 알 수 있는 집으로 당시대의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ㅡ자형 평면의 안채는 자연석 기단 위에 네모진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 간결한 양봉을 짜맞춘 팔작지붕집이다. 망새기와에\\\"조선개국 525년 병진월 10일 장수 부귀 남자(朝鮮開國五百二十五年丙辰月十日長壽富貴男子)\\\"라고 새겨진 글이 있으며, 지붕 네 귀의 망새기와에는 태극의 4괘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이 집은 본래 용화면 월전리에 있었던 집으로, 1932년에 매수하여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집의 규모는 ㄱ자형의 안채와 ㅡ자형의 부속채와 소슬형의 대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안채는 영사재(永斯齋)라 이름하고 있다. "임신 2월 23일 상량(壬申二月二十三日上樑)" 이라는 글이 있는 팔작지붕집이다. 오래된 건물은 아니나, 부분적으로 건축 양식상 특징있는 세부 부재를 갖추고 있다.
이 부도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부도이다. 넓이 120cm, 높이 60cm, 지름 23cm의 동그란 대석에 연꽃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부도를 안치한 특이한 모양의 부도이다. 부도는 직경 60cm, 총 높이는 100cm로, 섬세한 조각이 돋보인다. 이 부도는 원래 심원리 예전마을 부도골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긴 것이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로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講堂)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중간에는 내삼문(內三門)을 두었고, 그 뒤 편에는 문묘(文廟)인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 )·서무(西 )가 있어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로 제향을 받들고 있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실시되자 점차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문묘의 제향만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간향..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로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講堂)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중간에는 내삼문(內三門)을 두었고, 그 뒤 편에는 문묘(文廟)인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 )·서무(西 )가 있어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로 제향을 받들고 있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실시되자 점차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문묘의 제향만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동향..
이 곳은 조선 초기 정종∼태종 연간(1398∼1418)에 이 지역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서당이다. 남수문 이충범 김문기 박수홍 전팽령 등은 이 서당에서 배출된 인재들이다. 처음에는 풍곡당(豊谷堂)이라 하였다가, 명종 선조 연간(1546∼1608)에 이충범(李忠範)이 중수하여 강학(講學)하였으며, 광해군 6년(1614)에 정구(鄭逑)가 이곳에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강학을 장려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자풍서당』으로 바꾸었다. 인조 4년(1626)과 현종 5년(1664) 그리고 숙종 18년(1692)과 동 46년..
이 건물은 주존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신 불전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집으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중기 이후의 것으로 고종 30년(1893)과 1934년에 중수하였다. 1980년에 해체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절은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신라 법흥왕 14년(527) 또는 문무왕 8년(668)에 창건하였다고도 하지만 모두 믿기 어렵다.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大覺國師)가 국청사(國淸寺)라 했으나, 공민왕이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였으므로 영국사라 했다고 한다. 경내에..
황간향교 앞에 있는 누정으로 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393년(태조 2) 황간현감 하첨(河詹)이 창건하고 경상도관찰사 남공(南公)이 ‘駕鶴(가학)’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 건물의 명칭은 세월과 세상이 바람 따라 떠다닌다는 뜻으로 가학루라 하였다는 설과, 누각이 새의 날개와 같아 가학루라 하였다는 설이 구전되어온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서 광해군 때에 현감 장번(張蕃)과 구장원(具長源)이, 숙종 때에는 현감 황도(黃鍍)가, 정조 때에는 현감 이운영(李運永)이, 그리고 1930년에는 군수 김석영(金錫永)이 각..
민원도우미
민원도우미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맞춤형 검색 서비스교육정보안내
교육정보안내다양한 교육정보를 한눈에! 영동 교육정보 안내입니다.전체
정보화교육
평생학습교육
여성회관교육
등록된 교육정보가 없습니다.
농업교육
등록된 교육정보가 없습니다.
홈페이지바로가기
홈페이지 바로가기영동군 홈페이지를 한번에 바로갈수 있는 바로가기 정보 서비스영동군홈페이지
관과 및 사업소
유관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