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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도는 영국사에서 남쪽으로 200m쯤 되는 언덕 위에 있으며,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묻는 탑의 일종이다. 신라와 고려에서 많이 조성되었던 8각당(八角堂)형의 부도이고, 재료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건조 연대는 신라 말에서 고려초인 1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원각국사 유골이 영국사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이 비문에 남아 있어, 이 부도가 원각국사 사리를 안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임금이 옥새를 찍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단정하고 아담한 형태의 부도로 매우 우수한 작품으로 ..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일반형 석탑으로서, 2중기단 위에 3층으로 만든 몸돌을 세운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원래 옛 절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42년 주봉조사가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고, 현재의 대웅전 건물이 향하고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있는 이 탑은 2중 기단 위층과 아래층 돌이 바뀌어져 있어, 옮겨 세울 때 잘못 복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상륜부의 각 구조물에 쓰인 재료는 모두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통일신라 말기의 탑 중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비석은 고려 의종 7년(1154)에 선사(禪師:선종의 법리에 통달한 스님)가 되었고, 명종 1년(1171) 9월 12일 왕사(王師:임금의 스승)가 된 원각국사비 이다 원각국사는 대선사 교웅의 밑에 들어가 아홉 살에 중이 되었다. 선사의 유골은 영국사에 모셔졌으며, 고려 명종 10년(1180) 한문준이 비문을 지어 원각국사비를 건립하였다고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권에 그 전문이 소개되고 있다. 비몸돌(碑身)은 점판암 1장으로 되었으며, 비문은 총알을 맞아 손상된 곳이 많아 그 내용을 전부 알 수는 없다. 거..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쯤 되는 곳에 일명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화강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자연암을 그대로 이용하여 암석을 평평하게 다들어서 기단을 만들었다. 탑몸돌은 괴임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세웠고, 지붕돌은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탑의 전체 높이는 2.43m이다. 또한 이 탑에서 서북쪽으로 20m쯤 되는 지점에 흔들바위가 있는데, 크기가 6m, 높이 8m, 무게는 10여톤인데, 마치 고래가 헤엄을 치며 바다 위를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혼자서 ..
이 불상은 신항리 마을 입구에서 3m쯤 되는 언덕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4각형 반석 전면에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삼존석불 입상이다.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이 배치된 삼존 형식이다. 본 불상은 풍만한 얼굴을 하고 있고, 입과 입술은 윤곽이 뚜렷하며 콧날은 오뚝하다. 두 귀는 짧고 목이 긴 편이며, 삼도(三道:煩惱道, 業道, 苦道)의 모습은 없다. 이중의 원형 머리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안에는 연꽃무늬, 밖에는 확대하여 꿴 구슬 무늬가 이어져 있다. 반듯한 어깨와 중후한 체구 등 신체 각 부분에서 옛 ..
이 나무는 높이가 31m, 가슴 높이의 둘레는 11m이며, 나이는 대략 1000년쯤으로 추정된다. 가지는 2m 높이에서 갈라졌으며, 동서 방향으로 25m, 남북 방향으로 22m정도 퍼져 있다. 서쪽 가지 중 하나는 밑으로 자라서 끝이 땅에 닿았는데, 여기서 자라난 새로운 나뭇가지는 높이가 5m 이상이나 되고, 가슴 높이의 지름이 0.2m가 넘는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의 큰 난이 있을 때에는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이 나무 바로 옆에는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고 있다. 가을에는 이 은행나무..
이 미선나무는 아벨리오필룸(abeliophyllum) 속 물푸레나무과로 1속 1종이다. 낙엽이 지는 떨기나무로서 높이 1m∼1.5m 가량이며 잎이 마주 나는데, 타원형 또는 알 모양의 끝은 뾰족하다. 잎의 길이는 3∼6cm이고, 폭이 2∼3cm로 가장자리에 톱니는 없으며, 윗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두빛이다. 줄기는 네모 기둥이며,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고 향기가 좋으며 꽃은 보통 흰색이나 분홍, 상아, 푸른색도 있다. 이 나무는 3월 말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4월 초까지 계속 피는 것이 특징인데, 우리나라 특산..
이 집은 기와에 새겨진 글에, 조선 고종 22년(1885)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충청도와 경기지방 일부에서만 이와 같은 글새긴 기와를 가끔 사용한다는 것이다. 건물은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안채에 수직축을 맞춰 전면에 h자 모양의 사랑채를 놓았다. 안마당 동쪽에는 곳간채를 배치하였는데, 안채와 사랑채와의 사이에 있었던 행랑채, 광채 등은 20세기 초(1920년대)에 없어졌다. 대신 지금은 농가에 필요한 임시 경영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안채는 남부(경기도 이남의 땅) 형식(形式)의 평면 구성을 ..
이 집은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구분된다. 안살림은 ㄱ자 형의 안채와, ㄴ자 형의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 볼 때 ㅁ자 모양을 이룬다. 바깥살림에 해당하는 외부 공간은 변형이 많이 되어 전체적인 원형을 알기가 힘들다. 건축 연대는 기와의 기록에, 을유삼월(乙酉三月:1885년)과 병술삼월(丙戌三月:1886년) 두 종류가 있어, 19세기 말 건물로 추측된다. ㄱ자 형의 안채는 남부(경기도 이남의 땅)방식(方式)에 따라,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서와, 책방(작은사랑), 사랑대청, 사랑방 순서로 배치되었으며, 사랑채를 ..
이 집은 17세기 말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안채와 별당 형식의 안 사랑채만이 남아 있고, 안채 앞에 있었다는 사랑채는 현재 건물의 기단(基壇)만 남아 있다. 안 사랑채의 건축 연대는 17세기 말보다 조금 더 내려올 것으로 추측되며, 현존하는 문간채와 곳간채는 모두 20세기의 건물이다. 안채는 ㄷ자 모양의 집으로서, 부엌, 안방, 윗방, 대청을 일자로 배열하는 남도식 구성 방법인데, 대청 건너 모퉁이에 온돌을 놓지 않고 마루를 깔아 찬방으로 쓰는 것이 특이하다. 안 사랑채는 부엌, 안방, 윗방, 대청을 차례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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