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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향토유적 제 48 호 이 창효각은 김정만(金挺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34년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김정만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조정에서 효자상을 받았으며, 조선 중기 사람으로 본(本)은 김해(金海)이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 둥근기둥의 맞배 기와집이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 46 호 이 열녀문은 충주박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씨는 13세에 친어머니의 병환이 있어 지극 정성으로 모시었고, 출가해서는 시부모를 또한 정성으로 섬겼다. 그런데 남편과 자식이 한꺼번에 병을 얻어 위독하자 밤마다 목욕하고 남편 대신 죽기를 하늘에 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자식이 일시에 죽자 따라 죽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단식으로 끝내 자진(自盡) 하였다. 그 뜻을 기리고자 정조 8년(1784)에 정려 되었고, 조정에서 17량을 보조받아 열녀문을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
영동군 향토유적 제 44 호 이 효열문은 원주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고종 28년(1891)에 세웠다. 원주김씨는 호조판서(戶曹判書)겸 의금부사(義禁府使) 경주이씨 이영근의 아내로 남편이 병이 나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까지 하였으나 25세에 남편을 여의고, 시어머니 병환이 위독하여 참외를 원하니, 겨울인데도 원두막 밑에서 참외를 구해드려 병환이 덜했다 한다. 이 효열이 알려져 고종 27년에 지방유지 10명이 관(官)에 건의하여 상을 주었고, 이듬해에는 부역을 면제 받았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 기와집이며, 비의 높이는..
영동군 향토유적 제 43 호 이 효열문은 이집(李集)의 효행과 그의 부인 은진임씨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고종 22년(1885)에 세웠다. 이 집의 본관은 인천, 자는 대성, 호는 죽전(竹田)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효행이 뛰어나 숙종 때 생원(生員)에 올랐다. 임씨는 시예(詩禮)를 잘하였고, 용모가 뛰어났으며,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겼는데,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고 나서 혼인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 입고 자결하였다. 목조 기와집으로 한칸의 맞배집이다. ※ 생원(生員) :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하나인 생원시(生..
영동군 향토유적 제 42 호 이 열녀문은 남우한의 처 밀양박씨의 정절을 기리고자 순조 17년(1817)에 건립했다. 박씨는 남우한의 아내로서 출가한 지 1년 만에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남편이 병환 중에 부인의 몰골이 초라함을 보고 혹 옷을 갈아입기를 권하면 "남편의 병환이 낫지 않았는데 어찌 몸 치장을 하리요" 하고 3개월씩이나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원래 1600년경 삼괴당 남지언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쓰다가 초가로 있던 것을 1930년경 남씨 종중 정려로 개축하였다. 정면 1칸, 측면 1칸..
영동군 향토유적 제 41 호 이 비각은 밀양박씨 박운흠의 처 구례장씨 선덕비각 이다. 비각에는 "밀양박공운흠부인 구례장씨"(密陽朴公雲欽夫人 求禮張氏)라 음각 되어 있고, 비 뒷면에는 시가 음각 되어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각 기와집이며 막돌 담장으로 되어 있다. 비의 높이는 160㎝, 넓이 360㎝, 두께 20㎝ 이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 40 호 이 정문은 인천이씨 원동(源東)의 처인 선산 임씨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씨는 천성이 정숙하여 남편의 병환에 허벅지 살을 베어 먹임으로써 두 차례나 병을 고쳤다. 조정에서는 고종 29년(1892) 정렬(貞烈)로 정문을 명하였다. 효열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 기와집이다. ※ 정 문 :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 집 문 앞에 세우던 붉은 문
영동군 향토유적 제 39 호 이 정문은 통덕랑(通德郞) 배진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배진호는 본관이 성산(星山), 호는 병와(病窩), 자는 자천(子天)이다. 그는 부친이 중풍으로 한쪽 다리를 못쓰고 고생할 때 갖가지 약을 구해다 달여 드렸으나 소용없었다. 그러던 중 잉어와 꿀이 좋다는 말을 듣고 구하려 하였으나 때가 장마철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가에 앉아 통곡하고 있는데 갑자기 잉어가 튀어나와 잡아서 달여 드렸더니 병이 금방 나았다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임금이 1854년(..
영동군 향토유적 제 65 호 성균관 대사성 이거경(李居敬)과 자(子) 최진(崔振), 손(孫) 수(脩) 증손 원량(元良), 현손(玄孫) 문범, 행범, 충범, 신범 등 8위(八位)를 모시는 재각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집이며, 좌우로 방을 두고 중간 두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 대사성 : 조선시대 성균관의 으뜸벼슬, 정삼품
영동군 향토유적 제 63 호 계술재는 순흥안씨 옥담(玉潭) 안국민(安國民)의 손자로 작산현감(作山縣監)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푼 뒤 향리인 매곡면 옥전리로 낙향하여 후학양성에 힘쓴 통덕랑(通德郞) 안치장【(安治長), 자(字)는 수백(壽佰), 호(號)는 계술(繼述), (1621∼1674)】의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으나, 원래 공의 묘 앞에 있던 것을 1919년 7월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겨 세웠다고, 1934년 公의 8代孫 안상철(安商哲)이 지은 계술재기(繼述齋記)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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