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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에는 소라현(召羅縣)이라 하였는데, 소라라는 지명은 광평촌(廣坪村) 앞을 흐르는 소라천(召羅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 제 35대 경덕왕(757년)때 ‘물이 채워진 골짜기’ 라는 뜻에서 황간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동현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경산부(京山府: 慶北 星州)에 소속되어 감무(監務)를 두었고 공양왕 2년(1390)에는 김산군(金山郡)에서 금화부곡(金化部曲)으로 이속시켰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경상도(慶尙道)에서 충청도로 이속시키고 청산현(靑山縣)과 병합하여 황청현(黃靑縣)이라 칭하고 감무를 두었다.
선조(宣祖) 26년(1593)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현감 박몽열(朴夢說)이 진주성(晋州城) 전투에서 패하고 한 사람도 살아오지 못하였으므로 현(縣)을 폐하여 청산 현에 편입시켰다가 광해군(光海君) 13년(1621)에 다시 황간현으로 복귀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의 변화를 겪다가 고종 때(1895년) 8도 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 336군으로 개편됨에 따라 6개면 120개 동리를 관할하는 황간 군이 되었다. 일제시대인 1914년 총독부령에 의해 군·면이 통폐합됨에 따라 황간군을 폐지하고 군내면의 23개 동리, 서면의 18개 동리, 군동면의 상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황간면이라 하였다.
1947년에는 백자전리가 용산면으로 소속이 옮겨졌고, 1971년에는 난곡리(蘭谷里)를 난곡 1구와 2구로, 1975년에는 용암리(龍岩里)를 용암 1구와 2구로 분리하였으며. 1982년에는 신탄리(薪炭里)를 신탄 1구와 2구로, 1985년에는 옥포동(玉浦洞)을 옥포 1동과 2동으로 분리시키고, 1989년 매곡면 광평리를 편입시킴에 따라 현재 14개 법정리와 31개의 행정리, 43개의 자연마을로 편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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